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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릴랜드 Henry M.leland (1843~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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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하 작성일17-12-24 11:34 조회14,9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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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관계없이 전통과 품위가 있는 세계 3대 최고급 자동차를 꼽으라면 영국의 롤스로이스, 독일의 벤츠와 미국의 캐딜락을 들 수 있다.
헨리 릴랜드는 1843년 영국에서 이민온 소장수의 아들로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 났다. 12살때부터 정밀가공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릴랜드는 24세때 자신의 정밀가공공장을 디트로이트에 세워 부와 명성을 얻었다. 젊었을 때부터 익혔던 전문기술로 남북전쟁중에는 총 제작에 필요한 도구을 만들었으며, 그후 1/1000인치의 정확도를 낼 수 있는 기술로 이발용 기계를 만들어 냈다. 24세가 되던 1867년에는 디트로이트에 기계공장을 세우고 올즈모빌 설립자인 랜섬 올즈(Ransom Olds)에게 부품을 납품하기도 하였는데 1/1000의 오차까지 잡아내는 정밀한 기어를 공급해 능력을 인정 받고, 올즈모빌사로부터 엔진과 변속기 주문을 받아 기반을 다져나갔다.

1901년 10.25마력의 엔진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올즈가 받아들이지 않자, 정밀기술의 대가였던 헨리 릴랜드는 같은 모델인 경우 부속품을 서로 바꿔 끼워도 문제없는 부품 호환성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헨리 포드가 세웠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자금난으로 매각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회사를 인수해 1903년 캐딜락회사를 설립하고 릴랜드의 첫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자동차가 그 유명한 "캐딜락 1호차" 인 것이다. 이차는 2인승 1기통 10마력 엔진으로 시속 48km를 달렸다.
캐딜락은 부품표준화를 향한 릴랜드의 노력으로 부품교체가 가능한 최초의 자동차였으며, 자동시동기, 전기전조등을 선구적으로 채택하였다.
1908년 영국의 캐딜락 딜러인 프레드릭 바넷(Frederick Bannett)이 영국 황실자동차클럽에서 캐딜락 신차 3대를 분해하여 부품을 섞은 후 재조립해 800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하면서 캐딜락은 영국 황실(RAC:Royal Automobile Group)이 수여하는 토마스 드와 트로피(Tho mas Dewar Trophy)를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다.

얼마 후 리랜드는 캐딜락을 GM의 대표 브랜드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에게 매각한다. 그러나 1차대전이 일어나자 비행기 엔진 개발 문제로 듀런트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 GM을 떠나고 아들 윌프레드(Wilfred)와 함께 비행기 엔진 회사를 설립한다.
1919년에는 자동차 제작으로 업종을 바꾸고 회사 이름을 링컨(Lincoln Motor Co,)이라 정한다. 이듬해에 정식으로 링컨사를 설립하고 첫차인 링컨 V8(Lincoln V8)을 내놓지만 1922년 헨리 포드에게 이 회사를 매각한다.
말년에는 사회보장 제도나 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아 디트로이트 시민 연맹(Detroit Citizen League)를 설립하고 수년간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후에 이 공로로 미시건대학과 버몬트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핸리 릴랜드는 이렇게 미국의 고급차를 만들어 일생동안 남에게 좋은 일만 해주고 1932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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